슬로바키아, 트르나바 주, 두나이스카 스트레다

Dunajská Streda, Trnava Region, Slovakia
Dunajská Streda, Trnavský kraj, Slovensko

2022-07-07

 

2022-23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1차예선 1차전

FC DAC 1904 두나이스카스트레다 2:1 클리프턴빌 FC

(슬로바키아 vs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과는 분리된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축구에서는 잉글랜드와 별개의 국가로 취급한다.

@Mol Arena

입장료: 12유로(원정석)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침 이날 열리는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예선 경기를 찾아가서 보는 것.
수도에서 1시간 떨어진 홈팀 DAC FC와, 북아일랜드에서 온 원정팀 Cliftonville FC의 경기였다.

가장 큰 문제는, 킥오프 시간이 너무 늦은 밤이라는 사실이었다. 경기장이 있는 근교의 소도시(두나이스카 스트레다)로 가는 기차는 있지만, 돌아오는 막차가 없었다. 별 수가 없다면 마을의 기차역 주변에서 새벽 4시까지 벌벌 떨며 존버해야 했다. 그나마 나은 선택지는 히치하이킹이었다. (그래서 'Bratislava'가 적힌 종이까지 미리 만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일단 간다고 마음먹고 FC서울 유니폼을 챙겨입고 나왔다. 그때, 다운타운의 한 아이리시 펍에서 단체로 술마시며 응원가를 부르는 아일랜드 팬 한 무리를 찾아냈다. 벨파스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경기 전 앞풀이(?)를 하고 있던 원정팬 아저씨들이었다. 용기내 그들에게 물었다.

"나도 경기장 갈건데, 너희는 뭐 타고 갈거야?"
"혹시 그 버스에 나도 탈 수 있을까?"

 

벨파스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경기 전 앞풀이(?)를 하고 있던 원정팬 아저씨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보스"에게 인계되었고, 보스는 내게 술을 사주며 반가워했다. 운 좋게도 내가 입고 있던 붉은색 FC서울 유니폼은 그들, The Reds의 색상과 동일했고, 덕분에 나는 뭘 좀 아는 놈이 되었다. 나는 <손님>이 되었다.

친절한 그들과 수많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브라티슬라바 올드 타운의 거리를 행진했다. 원정버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들의 응원가를 들었다.

이날, Cliftonville FC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에 3,200석의 작은 홈경기장을 가진 스몰 클럽에서, 대한민국 서울에도 팬을 가진 글로벌 클럽으로 도약했다.

 

경기장으로 향하기 전, 브라티슬라바의 아이리시 펍(!)에서 응원하는 팬들. 오른쪽이 "보스"다.
1996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클리프턴빌 FC가 친선경기를 했을때 직접 뛰셨다는 아저씨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와우! 

영국 쪽에서 팀들마다 돌려쓰는 응원가

브라티슬라바를 행진하며
클리프턴빌 FC의 원정버스는 플릭스버스(Flixbus)에서 빌린 건지 플릭스버스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경기장에 가까워지니 경찰이 원정팬 버스를 에스코트한다.
경기장 도착! 2층버스 여러 대가 진입하니 슬로바키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12유로를 보스에게 내고 원정석에 같이 들어갔다.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는 2021-22시즌부터 신설된, 유럽의 3티어급 대회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의 아래 단계에 해당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들에겐 계륵 같은 애매한 권위의 대회지만, 상위 유럽대항전에 쉽게 나갈 수 없는 중소리그 팀들에게는 큰 기회다.
클리프턴빌 FC는 1879년에 생긴 아주 오래된 팀이다. 홈경기장 이름도 단 한 단어로, 멋지다. "Solitude"
감동적으로 저렴한 동유럽 경기장 맥주 가격! 1.8유로라니, 서유럽의 20~40%에 불과한 가격이다.
매점에서도 많은 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매치데이 머플러를 빌려서 찍었다
작은 경기장이지만 많은 홈 팬들이 들어찼다. 원정석에만 펜스와 그물이 삼엄하게 설치되어 있다.
가장 열심히 응원하던 친구들
선수들이 들어온다. 그물 때문에 잘 안 보일 것 같지만 실제 눈으로는 잘 보인다.
홈 응원석에서 헝가리 국기가 많이 보인다. 홈팀 DAC FC는 슬로바키아 팀이지만 헝가리 국경에 위치한 팀이라 그런지 헝가리 계열의 구단이라고 옆에 있던 친구가 알려줬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경기는 아쉽게 클리프턴빌이 1-2로 패배했다. 사실 크게 패하는 쪽이 훨씬 정배당(?)이었기 때문에 클리프턴빌 입장에선 선전한 결과다.
그래도 원정팬들은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맞이한다. 팀이 선전하기도 했고, 언제 또 유럽 원정을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응원은 끝날 줄을 모른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그리고 다시 돌아온 브라티슬라바에서도, 그들의 노래는 이어졌다.

 

<덤: 그들에 관해>
1. 아일랜드 사투리는 진짜 못알아듣겠다. 같은 영어가 맞나 싶다. 알아듣기가 너무 어렵기도 했고, 가뜩이나 응원 소리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대화하려면 내 귀를 그들의 입 바로 앞에 갖다대야 할 정도였다. 진짜로 이것 때문에 며칠 뒤 코로나 걸렸던 것 같다.
2. 팬들은 종일 노래를 불렀다. 경기 전에 도시에서 술마시면서, 버스까지 행진하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경기 내내,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경이로운 체력이다.
3. 1879년 창단된 Cliftonville FC은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팀이자, 유일한 가톨릭 기반 구단이다. 그래서 팬들은 하나같이 스코틀랜드의 셀틱 FC(가톨릭 팀) 또한 응원했다. 셀틱에서 뛰던 기성용과 차두리를 알았다. 그래도 영국인답게 잉글랜드에서 응원하는 팀은 제각각이었지만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4. 이들은 분명 UK Citizen이고 영국 학교를 다니고 영국에 세금을 냈지만 아일랜드 여권을 주로 갖고 있었다(UK/아일랜드 택1). 자세한 내막은 이들도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2005년 이전 북아일랜드 출생자들은 아일랜드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국적을 주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이들은 EU국가인 슬로바키아에 올 때 아일랜드 공화국 여권을 주로 사용했다.

5. 브라티슬라바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은 아일랜드 팬들의 응원소리로 시끄러웠다. 여기에 잠시 여행 온 사람들은 이 동네는 원래 밤이면 매일 이러는줄 알까?

 

<인스타그램에서 긁어온 글을 보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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